무속에서 법사는 독경, 법경, 축언을 하는 사제자를 일컫는다. 법사가 읽는 경문은 신통(神統)의 나열, 신병(神兵)의 결진, 귀신의 착금(捉擒) 등의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경문 축원 법사님은 지역적으로 약간의 차이가 있다. 보편적으로 전라도, 충청도, 강원도, 경상도 고장으로 나뉘어 불리게 된다. 그중에서도 전라도 앉은경은 법사님 사이에서도 으뜸으로 알아준다고 한다.
2012년 11월 7일 계룡산 치국산 나라굿당에서 전라도 앉은경 명인 고석원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다.
그의 나이 15세 고석원 선생님은 일찍히 아버지를 여의게 되었다.
장남이였던 그는 집안의 가세가 기울어지자 막중한 책임감과 함께 가장으로써의 역할을 임할 수 밖에 없었다. 아래로는 남동생1 명과 여동생이 3명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세상이 막막하고 어둡기만 했다.
감성이 풍부했던 사춘기 시절이였지만 그는 주변의 친구들과 항상 대조적인 생각과 행동을 해야만 했다. 현실 사회에 바로 진출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주경야독[晝耕夜讀]이라 했던가... 낮에는 생활비를 벌어야 했으며 밤에는 책을 읽어야만했다. 15세부터 그는 회사에 취직을 하여 생활고를 극복하면서 야간 중학교와 야간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된다.
넉넉지 않은 형편속에서 자기 보다 아래 동생들을 책임지는 장남이며, 가장으로서 그 역할이 더 없이 무겁고 힘들었을 것이다.
17세에는 별다는 증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가만히 서 있기도 힘들 만큼 온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급기야 병원을 찾아갔으나 황달병이라는 병명 진단을 받았다. 황달이라는것이 소히 일컬어 담즙이 원할지 못해 누렇게 뜨는 병이라고 하지만... 여하튼 진료와 치료를 받으며 병을 이겨 보려 했지만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지리산과 고석원... [우여곡절속에 그의 나이 22세, 결국 그는 지리산으로 입산하게된다.]
막연하게 황달이라고 하기에는 그 증상이 뚜렷하지도 않았고, 그 와중에 어느 무속인을 찾아 갔더니 제자길을 걸어야 한다는 충격적인 말에 그는 더욱더 카오스적인 혼돈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그러한 혼돈을 극복하고 벗어나기 위한 돌출 행동도 마다 하지 않았다. 몸이 더러워 지면 신명이 오지 않는다는 얘기를 듣고는 똥지게를 지고 분뇨를 푸러 다니는 일도 마다 하지 않고 했던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그의 나이 22세가 되었다. 자신의 정체성과 매일과 같이 시달리는 환청과 환상, 그리고 원일 모를 병마...
그는 점점더 쇠퇴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그는 빈 주머니로 지리산으로 들어가게 된다.
진정 내가 누구인가? 진정 내가 무당으로 가야 하는가? 모든것이 궁금했고 모든것이 시간이 가면 갈수록 막막함은 더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