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는 1만8000신(神)들이 사는‘신들의 섬’이라고 한다. 요즘 제주도 해안이나 산간 등의 마을을 찾으면 마을회관 등에 쳐진‘금줄’이 쉽게 눈에 띈다.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마을제가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필자가 어제 찾은 고향 마을회관에도 신성한 곳임을 알리는 금줄이 매달아 있었다. 마을제는 모시는 신의 이름이 달라 명칭도 포제, 마을제, 동제(洞祭), 해신제, 토신제, 당제, 풍어제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며 전승되고 있다.
마을제는 크게 남성 중심의 유교적(儒敎的)방식과 여성 중심의 무속적(巫俗的)방식으로 나뉜다. 대표적인 유교적 포제는 제주시 애월읍 납읍리 마을제로 제주도무형문화재 6호로 예전 그대로의 유교식 제법에 의해 유지·보존되고 있다.
여성 신이 좌정하고 있는 본향당에서 열리는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 마을제는 대표적인 무속적 방식 마을제로 제주도 무형문화재 5호로 지정돼 전승되고 있다.
▲마을제는 조선시대부터 시행됐다. “옛 문헌을 보면 본래는 남녀 모두 무속의 본향당에 모여 굿을 하였는데, 남성 사회에 유교제법이 보급됨에 따라 남성들이 무속의 본향당에서 떨어져 나와 포제를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시기는 조선시대 중기 이후로 여겨진다.” (현용준 ‘제주도의 유식 부락제’)
마을제는 섬이라는 제주의 특수성과 연관이 깊다. 제주도는 고통과 항쟁의 섬이다. 고려시대에는 세계 최강의 몽골제국에 저항했던 삼별초 최후 거점이었다. 그 대가로 제주도는 100년 동안 몽골 지배를 받았다.
조선시대에는 중앙정부의 통제와 감시가 제대로 미치지 못했던 탓으로 탐관오리의 착취와 횡포가 심했다. 광복 이후에는 한국 현대사의 비극적인 사건인 4·3에 몸서리를 쳤다.
이런 고립과 항쟁, 고통의 땅인 제주섬에서 제주민들은 신에게 삶을 지탱하고자는 마음이 간절할 수 밖에 없었다.
▲마을제는 제주인이 정서가 녹아드는 공동체문화이다. 이웃끼리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한 후 제례를 지내면서 안녕을 기원하는 것은 자신에 대한 사랑이며 이웃에 대한 베품이다.
언어병리학자인 엘리너 와일리는 ‘내 인생과 화해하는 법’에서 공동체에 대해 이렇게 묘사했다.
“공동체가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우리의 육체적·감정적·정신적인 부분을 응원하고 지탱해주기 때문이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 만약 어떤 공동체에 속해 있다면 그들은 나의 짐을 함께 져줄 것이다.”
제주일보<고동수 편집부국장대우 교육부장>